20대 초중반 때까지는 노래방에 가서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는데, 주변에 특이한 사람이 많아 나도 꽤나 영향을 받았다. 가령, 한 친구는 표절한 노래를 찾아 원곡 노랫말로 부른다든가, 일본 애니메이션 노래만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이는 어떤 노래든 응원가로 만들어서 발라드를 부르는데도 웬지 일어나서 율동을 취하고 싶게 만들기도 했다.
내 노래 실력이 안좋다는 걸 깨달은 뒤, 나도 개성을 파기로 했는데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동요를 메탈처럼 부르는 건데 애창곡은 올챙이와 개구리였다. 다른 하나는 코러스 담당이다.
코러스 담당이 뭐 특이할 게 있겠냐 생각이 들텐데 그렇지 않다. 다음은 내가 연습한 코러스 부분인데, 어떤 노래인지 맞춰보시라.
2007년에 난 삶에 정말 큰 영향을 준 선택(결정, 판단)을 두 개 했다. 첫 번째는 Django라는 개발 도구를 선택한 것이고, 두 번째는 넥슨에서 게임을 만들다 태터앤컴퍼니라는 인터넷 서비스를 만들던 회사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Django는 Python용 웹개발 framework이다. 공식 발음은 쟁고라는데, (적어도 한국에서는) 보통은 장고라고 읽는다.
내가 처음 Django를 처음 접한 때는 2006년이다. 당시엔 RoR(Ruby on Rails)라는 개발 조합이 관심을 많이 끌던 시기였는데, 5분 만에 블로그 만들기라는 스크린캐스트가 인기를 끌었다. 즉, 프레임워크를 이용하여 아주 쉽고 빠르고 유연하게 웹 개발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단순히 구현만이 아니라 아주 후다닥 만들어낸 결과물이 제법 그럴싸한 모양새를 갖추었다. 가령, 존재하지 않는 페이지에 접속하면 아주 불친절하게도 흰 화면에 error, 404 뭐 이런 글자들만 덜렁 띄우는 경우가 많았는데, RoR이나 Django 등을 보면 디자인 된 오류 화면이 프레임워크에 내장되어 있어서 5분 만에 만든 블로그인데도 제법 그럴싸하게 보였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외양은 내 관심사가 아니어서 저런 친절한 요소가 내겐 별 감흥을 일으키지 않았는데, 내가 당시 주목받던 여러 프레임워크 중 Django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엉뚱하게도 외양 때문이었다. Django에 대해 다루는 책을 온라인으로 운영하는 djangobook.com 이라는 서비스를 우연히 접했는데, 한창 내용이 작성되던 시기여서 내용은 별로 없었지만 웹페이지 외양이 마음에 들었다.
얼마 후, 난 넥슨 동기인 김세중의 걱정과 강한 반대를 뒤로 한 채 태터앤컴퍼니라는 회사로 전직했고, 체스터(노정석)님과 김창원님에게 이리저리 깨지며 웹을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난 웹브라우저에서 즐기는 육성 게임 프로토타이핑을 만들기로 하고는 그간 관심을 가졌던 Django를 선택했다.
당시 Django 버전은 0.96이었다. Python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는 2001년부터 깨작깨작 다루긴 했지만 뭔가를 만드는 데 제대로 써본 적은 없었고, 무엇보다 국내에 한국어로 작성된 Django 자료도 거의 없던 그 시기에 Python와 Django를 고른 건 썩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다. 이삼 일이면 PHP로 계획한 것을 다 만들었을 프로토타이핑이었는데, Django로 처음으로 Hello world를 갓 띄워본 상태에서 공부하며 뭔가를 만들려니 1주일이 넘은 시간을 들였는데도 아주 사소한 부분만 겨우 만들었다. 더 어이없는 건, 1주일 넘게 시간을 들여 만든 프로토타입 버전에서 Django를 활용한 부분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시간이 부족해 Django로 개발하던 부분을 싹 걷어내고 가짜(dummy) 데이터로 기능을 구현한 것이다.
그 어이없는 일 때문에 오기가 생겼고, Python과 Django를 파고 들었다. 한국어로 작성된 자료가 거의 없어서 고생했던 나같은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해서 Django 강좌를 썼다. 그 강좌가 인연이 되어 한 해커를 알게 되었고, 그 해커는 얼마 후 나와 함께 창업을 하여 현 Flaskon의 C.T.O가 된다.
만약, 그때 RoR을 선택했다면 지금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역시나 창업은 했을텐데, 누구와 함께 하고 있을까?
새삼 느낀다. 사르트르가 말한대로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이다. 내 선택이 내 삶이고 내 삶이 곧 내 선택이다.
학창 시절, 저는 조용하고 잘 움직이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왕따를 당한 건 아니었습니다. 반마다 꼭 한두 명씩 그런 애들 있잖아요. 학년이 올라 반이 바뀌면 “어? 그런 애가 있었나?” 싶은 존재감 없는 아이. 그냥 자기 세계에 빠져 있어서 자기 세계 밖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아이. 저는 그런 아이였죠. 다른 아이들도 제게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고 저도 관심 받길 원치 않았습니다. 그냥 혼자 가만히 있게 냅두길 바랐죠.
어느 날, 저는 제가 만든 첫 게임 Peculiar day를 3.5인치 플로피 디스켓에 담아 학교에 가져갔습니다. 완성한 건 아니었지만, 얼추 게임처럼 보였고 곧 아이들의 호기심을 일으켰죠. 어, 뭐야?! 정말 이거 너가 만든거야? 나도 이거 깔아줘, 대단하다! 그때부터 저는 어리바리하고 조용하여 존재감 없는 아이에서 컴퓨터 잘 다루는 아이 혹은 게임 만들 줄 아는 아이가 됐습니다.
2. 제 이야기(story)를 들어볼래요?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사회 속에서 내 존재의 의미를 찾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이르는 첫 관문이 이름인 것은 내 이름을 불러줄 이가 아무도 없다면 더이상 이름은 나에게 의미가 없듯이 말이죠. 그렇게,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우리 존재를 인식하고 정의하는 거겠죠?
전 숫기도 없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 탓에 사람들 사이에 잘 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인연을 맺는 데 어려움을 많이 겪지요. 외로움을 타진 않지만, 그래도 혼자로만 살아간다면 분명 쓸쓸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어찌저찌 인연을 맺어가며 제 역할을 조금씩 해나가고 있는데, 다른 사람과 서로 연결되는 좋은 방법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바로 상대방의 이야기(his/her story)를 진심으로 듣고 제 이야기(my story)를 진정성 있게 들려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 남이 들려주거나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는 서로 마음을 잇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합니다. 다른 사람과 마음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아주 짜릿하며, 그렇게 맺어진 관계는 우리가 존재하고 살아가는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누군가 나를 알아주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마음을 알아준다면 우리는 사회적 존재(social being)의 고통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마치 제가 그런 것처럼요.
3. 게임으로 사회와 소통하고 참여하고 싶다
시작은 단순했습니다. 기부 말고 나라는 존재로 사회에 기여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겨울철에 김장 담그거나 연탄 나르기, 보육원에 가서 함께 어울리기 등은 되도록 우선순위를 낮췄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아주 뜻깊은 활동이지만, 기왕이면 제가 잘할 수 있는 일로 기여를 하고 싶었거든요. 그건 바로 게임 개발입니다.
고민은 2011년부터 본격화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민만 깊어질 뿐 실행에 옮기질 못 했는데, 게으른 절 움직이게 하는 강한 동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슴을 뜨겁게 불붙여 도무지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강렬한 불씨 하나. 그 하나가 잡힐 듯 말 듯 가물가물 뒷통수 저 언저리에서 맴돌기만 했습니다.
4. 희망예술기지
영화 “도둑들”에서 조감독으로 참여하기도 한 친구 tae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 친구는 수시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만드는 영화학교 활동이 제 관심을 끌었지요. 아이들과 영화를 만드는 영화학교처럼 게임제작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게임을 만드는 경험을 준다면, 아이들은 게임을 소비 컨텐츠가 아닌 창작 컨텐츠로 대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최근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붉어지고 있는 게임에 대한 안좋은 인식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가 참여해 활동하고 있는 희망예술기지에 찾아가게 됐습니다. 실은 구체화한 계획이나 목표 없이 아이디어만 달랑 들고 갔기에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제 이야기(my story)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누군가의 이야기라고 해도 아무 상관없을 그렇고 그런 이야기였지요.
이야기를 나누던 중 화제가 희망예술기지에 오는 아이들로 넘어갔습니다. 희망예술기지에 오는 아이들은 학교와 같은 자신들의 사회에서 어려운 상황에 놓인 처지였습니다. 학교 폭력이나 부적응, 우울증 등 다양한 이유로 자존감이 무너질대로 무너진 아이가 많다고 했습니다. 아… 희망예술기지의 최미환 대표님은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셨지만, 그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가득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을 향한 감정이 전해져 왔습니다.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진정성 있는 그 이야기는 사회단체나 봉사라는 주제로 묶을 수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그 분 자신의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그 분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제 학창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제가 만든 게임으로 아이들과 조금씩 맺어지던 그때가 떠올랐습니다. 비로소 가슴에 불이 붙어 사회에 기여하려는 일은 제 진심이 담긴 일이 되었습니다. 제 이야기(my story)를 담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5. 저와 함께 게임으로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실래요?
저는 1주일에 한 번, 3시간씩 15회에 걸쳐 아이들(중고등학생)과 함께 게임을 만들려 합니다. 이 아이들에게 게임을 만드는 경험을 주고, 게임을 만들었다는 자신만의 이야기(추억, 경험)를 만들어 주려 합니다. “이거 내가 만든 게임이야. 한 번 같이 해보지 않을래?”라는 말을 다른 친구에게 그리고 부모님에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게임을 자신이 즐기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주려 합니다.
여러분이, 그리고, 우리가 만드는 게임은 분명 여러 사람을 즐겁게 해줄 것입니다. 우리 게임 개발자가 만들어낸 그 재미는 짧은 시간이라도 즐겁게 놀 수 있게 도와 사회 속 긴장감을 낮추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우리는 게임을 만드는 도전과 노력에 대해 당당하고 자랑스러워 해도 됩니다. 그리고, 이런 뿌듯하고 자랑스런 경험을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고자 하는 아이들에게 나누어 이 아이들이 자신만의 이야기(스토리)로 만들고 그 이야기를 함께 써나아가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에게 게임을 만드는 기술을 전수하는 게 핵심이 아닙니다. 게임을 만드는 과정을 함께 겪고, 서로가 공통된 목표를 향해 나아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잇는 것이 목표이자 목적입니다.
여러분.
저와 함께 게임으로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실래요?
6. 참가 방법과 필요한 것
희망예술기지와 함께 하는 게임제작학교에 참가할 선생님들을 모십니다.
모집 기간 : 2013년 3월 31일까지
모집 분야
게임 그래픽 : 2D/3D 그래픽 디자이너 각 1명
게임 프로그램 : 게임메이커나 게임샐러드와 같은 게임 저작 도구 이용하여 게임 개발할 프로그래머 2~3명
게임 기획 : 게임 디자이너 1~2명
위 분야가 아니더라도 “이런 걸로 나도 참여/기여를 할 수 있다!”라면 분야 상관없이 참여 가능합니다.